축구
'응원단도, 취재진도, 생중계도 없는' 평양행, 벤투호의 각오
"경기 외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잘해야죠."응원단도 없고 취재진도 없다. 생중계도 불투명하다. 지켜보는 것은 오직 5만여 명의 북한 관중들뿐. 낯설고 외로운 평양 원정길을 앞둔 벤투호의 현실이다. 그래도 김신욱(31·상하이 선화)의 말처럼 선수단은 침착했다.파울루 벤투(50)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15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북한과 원정 경기를 앞둔 벤투호는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14일 평양에 도착, 15일 경기를 치르고 다음날인 16일 다시 베이징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북한전은 앞서 1,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2연승을 달리고 있는 벤투호가 2차 예선에서 맞이한 첫 번째 고비다. FIFA랭킹 37위 한국과 113위 북한의 대결, 전력면에선 크게 부담되는 승부는 아니다. 그러나 가깝고도 낯선 땅, 북한의 심장부 평양에서 치르는 첫 번째 공식 A매치라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1990년 10월 11일 남북통일축구가 평양 원정으로 치러지긴 했으나 당시 경기는 공식 A매치가 아닌 친선경기였다. 심지어 그 때 한국은 김주성의 선제골에도 1-2로 패하며 역대 16번의 맞대결 전적 중 유일한 패배(7승8무1패)를 기록한 바 있다.2차예선에서 북한과 한 조로 묶이면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경기가 바로 이 평양 원정이다.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지는 조별예선의 특성상, 북한이 벤투호의 방북을 허락할지 아니면 중립국에서 경기를 치를지 관심이 집중됐다. 이후 북한축구협회가 평양 개최를 확정하면서 29년 만의 평양 원정이 성사됐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평양 원정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했다. 한국이 가장 최근 평양 원정을 치른 건 2017년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과 맞붙은 여자축구다. 당시에도 중국을 경유해 입국하는 등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북한의 요구사항이 한층 더 엄격해졌다. 선수단 규모를 최소화해달라는 요청에 응원단과 취재진의 비자 발급을 위한 초청장 요청에는 묵묵부답, 여기에 TV 생중계 협상도 답보 상태라 중계진 방북도 무산됐다. 결과적으로 25명의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 임원 등 총 55명만 평양 원정길에 오르게 됐다.적대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목소리 하나 없이 북한 관중들에 둘러싸여 경기를 치러야하는 건 태극전사들이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이다. 어떤 나라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더라도 교민들의 응원과 관중석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원정에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목소리도, 태극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기장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고등학교 때 이후 뛰어본 적 없는 인조잔디고, 그라운드 밖에서도 행동에 제약이 있다. UN 제재 대상 국가로 반입물품도 제약이 있고 휴대폰은 반입 금지라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의 주한대사관에 맡겨둬야 한다. 공식 호텔 밖으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안방에서 패배를 용납치 않는 북한의 분위기상 경기장에서도 험난한 승부가 예상된다. 벤투호가 2차예선에서 받아든 최우선 과제가 한국을 상대하는 약체들의 밀집수비인데, 이번 북한전 역시 마찬가지다. 벤투 감독은 "거칠고 과감한 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역습시 굉장히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선수들이 잘 대비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며 "북한이 갖고 있는 장점도 있지만 공략할 틈도 있다. 한 차례 공식 훈련만 남았는데 잘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 가져오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인천공항=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19.10.14 06:00